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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일 화제가 되고 있는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
그리고 록 밴드 '퀸'그 노래만으로도 사람들은 가슴 떨려하고,
극장 안의 모든 사람들은 '퀸'으로 하나가 되었다.
극장 안을 곧 콘서트장으로 만들어버린 '퀸'
영화에서는 볼 수 없었던 퀸의 이야기를
남무성 만화 '페인트 잇 록'에서 재미있게 알아보자.
보헤미안 랩소디는 교묘하게 포장된 거짓 오페라였다.
하지만 쏟아지는 듯한 화려한 보컬 코러스와 헤비 사운드의 조화는 정말 기발한 아이디어였다.
보헤미안 랩소디는 멤버들이 코러스를 무려 180번의 오버더빙을 거쳐
웅장한 아레나(Arena) 오페라의 효과를 유도한 곡이었다.
- PAINT IT ROCK (페인트 잇 록) -
1970~80년대를 풍미했던 퀸은 하드록을 팝뮤직의 영역으로 끌어올린 일등공신이었다. 천부적인 가창력의 소유자 프레디 머큐리(Freddie Mercury)의 하이 테너를 중심으로 드라마틱한 악곡 전개, 폭포처럼 쏟아지는 보컬 코러스로 버무린 헤비 록 사운드는 화려하기 그지없었다.
그러나 ‘교묘하게 꾸며진 거짓 오페라’, ‘허세의 산물’, ‘글램 록의 아류’라는 일부의 혹평도 잇따랐다. 물론 레드 제플린이나 딥 퍼플처럼 질펀한 헤비 블루스는 아니었지만 퀸은 자기들만의 방식으로 동시대의 하드록 씬을 장악해나갔다. 프레디 머큐리의 독특했던 화장술이나 사치스럽기까지 했던 무대연출 때문이 아니라 음악 그 자체로서 충분히 글래머러스(glamorous)한 밴드였던 것이다.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 홍보 포스터
퀸은 기록적인 면에서도 대단한 팀이었다. 활동 기간 중 발표했던 20여 장의 앨범 모두 밀리언셀러를 기록했으며, 하드록 그룹으로서는 드물게 두 곡의 빌보드 넘버원 히트 싱글(Another One Bites the Dust, Crazy Little Thing Called Love)과 15곡의 톱 40 싱글을 보유하고 있다. 그런가하면 1976년의 미국 투어 기간 중에는 초기 네 장의 앨범 모두가 다시 영국 차트 정상에 오르는 신기한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상업적인 데이터가 이렇다 보니 록 애호가들 사이에선 퀸을 록 그룹이라기보다는 팝 밴드로 보는 시각이 많다. 분명히 80년대 이후의 퀸은 팝 밴드였다. 하지만 팝이든 록이든, 그 황홀했던 하모니 록이야말로 퀸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했을 일이다.
사실 퀸의 출발은 그다지 좋지 못했다.
퀸은 데뷔 초기에 프레디 머큐리의 화장과 야릇한 무대의상 때문에 '한물간 글랙 록', '과도한 연출'이라는 비아냥을 듣기도 했다.
마크 볼란이나 데이빗 보위, 록시 뮤직을 어설프게 흉내 낸다는 비판이었다.
퀸의 최고작으로 평가되는 4집 <A Night At The Opera>는 1975년 11월에 발표되었다.
오페라 형식을 도입한 록 발라드의 명곡 보헤미안 랩소디(Bohemian Rhapsody)를 담고 있는 작품이었다. 보헤미안 랩소디는 앨범에 앞서 발표 되어 영국 차트 1위에 올라 장장 9주간 정상을 지켰고 괴상한 가사, 6분에 달하는 대곡 임에도 불구하고 미국 빌보드 차트 9위까지 올랐다.
출처: pos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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