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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을 담는 매체는 기술의 발전과 함께 여러 번의 변화를 거쳤다.
플라스틱 레코드에 음을 새겨 넣던 시대가 수십 년을 이어오다가, 손실률 없는 디지털 음원을 시디(CD)로 감상하던 시대로 바뀌더니 아예 형체가 없는 디지털 파일인 엠피스리(MP3)가 시디를 몰아냈다.
요즘은 음원을 저장할 필요도 없이 언제든 감상이 가능한 스트리밍 전성시대다. 어쩌면 소유의 시대에서 공유의 시대로 향하는 인류 문명의 흐름을 가장 잘 보여주는 변천사가 아닐까 싶다. 오늘은 가장 원시적인 음원 전달 매체였던 엘피(LP)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시절 음악 좀 들었다는 ‘아재’, ‘언니’들이라면 모를 리 없을 ‘빽판’ 이야기를 풀어볼까 한다.
빽판. 조금 더 공식적인 용어로는 해적판이라고 한다. 아마도 불법으로 뒤에서 판다는 의미로 ‘빽’이라는 단어가 붙은 것 같다. 정식으로 가수와 작곡가에게 로열티를 지급하고 제작하는 라이선스 레코드와 달리, 음지에 숨어 있는 공급자들이 불법으로 유통하는 음반이었다. 당시 국내 음반사에서 발매하는 라이선스 레코드가 3000원 안팎이었는데 해적판은 1000원 안팎. 열악한 시설로 찍어내기 때문이었는지 음질이 엉망이었다. 엘피판 특유의 듣기 좋은 잡음이 아닌, 지글거리는 마찰음이 듣는 내내 귀에 거슬렸다. 역시 조악한 화질로 복사한 재킷은 앞쪽만 컬러, 뒤쪽은 흑백이었다. 그리고 빽판 특유의 냄새가 났다. 싸구려 기름 냄새 같은?
원하는 음악은 뭐든 들을 수 있는 지금과 달리, 그때는 국외 음악 중에서 국내 음반사와 계약해 들어오는 라이선스 음반이 한정되어 있었다. 물론 외국에서 레코드를 수입해오는 몇몇 가게에서 정식 수입 레코드를 사면 최고였지만, 1980년대 당시 돈으로 장당 만원이 훌쩍 넘는 수입 레코드를 매번 살 수는 없었다. 게다가 라이선스 음반 중에서도, 헤비메탈처럼 과격한 가사를 담은 노래들은 심의에 걸려 금지곡으로 묶이는 경우도 비일비재했다. 열 곡 중에 두세 곡이 지워진 라이선스 음반을 사느니 음질과 재킷을 포기하더라도 해적판을 사는 편이 나을 때도 있었다.
빽판 가게들은 청계천 일대에 많았는데 빽판을 사러 갔다가 엉뚱한 신세계에 눈을 뜨기도 했다.
“학생 좋은 거 있는데 보구 가.”
팔짱을 끼고 실실 웃는 아줌마를 따라가 보면 철물점이나 공구 가게 구석에 사춘기 소년의 호르몬 분비를 촉진하는 물건들이 있었다. <플레이보이>나 <펜트하우스> 같은 미국 잡지부터 이름 없는 작가가 그린 조잡한 외설 만화, 갖고 있는 것만으로도 반에서 권력자가 되는 포르노 비디오테이프까지. 망설이는 소년에게 아줌마는 살색 가득한 사진을 쓱 보여주며 가격을 말해주곤 했다.
“책은 1000원, 잡지는 2000원, 테이프는 5000원이야.”
‘빨간책’이라고 부르던 음란서적과 비디오테이프를 몇 번 구매했다. 친구들과 서로 갖고 있던 빨간책을 교환해서 보기도 했다. 엄마 몰래 비디오를 보다가 테이프가 카트리지 안에서 씹혀서 안 빠지기라도 하면 정말 하늘이 노래지던 기억이 난다. 요즘 애들이 보는 인터넷 야동에 비하면 청소년 권장도서 수준이었는데도 그때는 왜 그렇게 침이 꼴딱꼴딱 넘어갔는지.
음란물의 유혹에도 불구하고 청계천은 너무 멀어서 자주 들르지는 못했다. 학교를 마치고 집에 오는 길에 강남고속터미널 지하에 있던 ‘산울림 레코드’와 압구정 미성아파트 상가의 ‘석기시대 소리방’을 자주 찾았다. 둘 다 겉으로는 합법적인 음반 가게였지만 카운터 뒤쪽의 비닐을 걷어내면, 수배 중인 운동권 형아 누나들처럼 빽판이 잔뜩 웅크리고 숨어 있었다.
전두환씨가 불교에 큰 뜻을 품고 백담사에 들어간 뒤, 문화예술계를 짓누르던 가요 심의 제도도 조금씩 정상을 찾아갔다. 금지곡도 점점 없어지고 엔간한 음반들은 온전한 상태의 라이선스로 발매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빽판도 점점 자취를 감추었다. 결정적으로 엘피의 시대가 끝나고 시디의 시대가 도래하면서, 빽판은 공룡처럼 지구상에서 멸종되었다.
나는 나중에 알았다. 국민 정서를 해친다는 이유로 노래에 금지곡 딱지를 붙여대던 정권이 사실은 훨씬 더 사악한 방식으로 국민을 기만하고 해쳤다는 사실을. 광주에서 자국민들을 학살한 정권이, 가사가 폭력적이라는 이유로 노래들을 금지시켰다니. 지금 생각해도 구역질 나는 블랙코미디다. 그러므로 빽판은 죄가 없다.
방송국에서 손실률 0%의 깨끗한 음원을 감상하다가도, 가끔 지글거리는 빽판 소리가 그리워지곤 한다. 빨간책을 보며 침을 꼴깍 삼키던 소년의 눈동자도, 1000원짜리 빽판 한 장에도 들떠서 가벼웠던 소년의 발걸음도 모두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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